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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의 클래식 칼럼] '별이 되다'... 엔니오 모리코네를 기억하며
  • 기사등록 2020-07-24 11:04:51
  • 기사수정 2020-07-24 1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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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되다..엔니오 모리코네를 기억하며'


음악 칼럼니스트 여명진 크리스티나

現) 독일 뮌헨 대교구 소속 가톨릭 교회음악가 및 지역 음악감독

-유로저널 독일부 기자

-음악 칼럼니스트



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죽었다. 늘 내 곁에 있는 친구들과 멀리 있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담아 이 소식을 전합니다


▲ 엔니오 모리코네 (1928-2020) 작곡가, 지휘자 / (사진: christina YEO 제공 )


7,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직접 쓴 부고로 본인의 죽음을 세상에 알렸다. 영화음악 작곡가로 잘 알려진 모리코네는 산타 체칠리아 국립 음악원에서 트럼펫과 작곡, 합창지휘를 공부한 클래식 음악 전공자이다. 풍성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영상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사실적인 사운드를 그려냈다. 500편이 넘는 영화음악을 작업하며 남긴 그의 곡들은 영상과 긴밀히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결코 영화음악이라는 한계 안에 갇히지 않았고, 평소 모리코네의 철학처럼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홀로서기가 가능해 영화의 흥행과 관계없이 오랫동안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음악의 힘은 강렬해서, 겨울이 깊은 어느 날 들었던 노래가 한여름 땡볕을 코끝 시린 겨울로 만들기도 한다. 모리코네와의 작별을 맞이하며 떠오른 수많은 음악 중 몇 곡을 골라내기란 쉽지 않지만, 어디선가 이 선율이 흘러나오면 그가 그리워질 것이다.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 1988)


로마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영화감독 토토는 고향에서 부고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그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이탈리아 남부 작은 마을에 살던 꼬마 토토. 영화를 너무도 사랑한 소년은 학교 수업을 마치면 마을 광장에 있는 낡은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 극장으로 달려가 영사기사 알프레도에게 영사기술을 배우곤 했다.



▲ (사진: christina YEO 제공 )



어느 날 알프레도는 화재 사고로 실명하게 되고, 토토가 그의 후임으로 시네마 천국의 영사 기사가 된다. 알프레도는 사고 후에도 언제나처럼 토토의 곁에서 친구이자 아버지로 따뜻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한 토토는 학업을 중단하려 하지만, 알프레도의 충고로 계속 학교에 다니기로 한다. 그곳에서 만난 여학생 엘레나와 사랑에 빠지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토토는 좌절한다. 실의에 빠진 토토에게 알프레도는 더 넓은 곳으로 가 많은 경험을 쌓기를 당부하고 토토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고향을 떠난다. 이후 토토는 로마에서 활동하며 영화감독 살바토레로 명성을 얻게된다. 알프레도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30년 만에 고향을 방문했지만, 낡은 극장 시네마 천국TV와 비디오에 밀려 철거를 앞두고 있었다. 장례식 후 로마로 돌아온 살바토레는 홀로 영화관에서 알프레도가 유품으로 남긴 영화 필름을 돌려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의 내용도 아름답지만, 영화 내내 흘러나오는 음악은 토토와 알프레도의 80년 간극을 우정과 사랑으로 이어준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그의 음악이 완성되는 순간 '시네마천국'도 비로소 완성되었다라고 모리코네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하였다.


인생은 네가 본 영화와는 달라.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혹독하고 잔인하단다. 그래서 인생을 우습게 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영화 속 알프레도의 대사처럼 때로 현실은 영화보다 혹독하고 잔인하지만, 때로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아름답다. 음악은 그 혹독하고 잔인한 순간을 위로할 것이고, 돌아올 수 없는 아름다운 어느 시절의 기억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내일을 희망하게 할 것이다.


'미션' (The Mission, 1986)


1986년에 개봉한 롤랑 조페 감독의 '미션'18세기 남아메리카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예수회 신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수회 신부 가브리엘과 로드리고는 기독교적 사랑사회적 정의앞에서 갈등하게 된다. 로드리고는 원주민들을 위해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고, 가브리엘 신부 역시 자신만의 방법으로 억압 받는 자들의 편에 선다. 성품과 가치관이 다른 두 신부의 대립을 통해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사랑과 정의 그리고 희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 (사진: christina YEO 제공 )


영화 삽입곡이 굉장히 유명해서, 영화를 아직 접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이 영화의 삽입곡은 제법 익숙할 것이다. 이구아수 폭포와 그 위로 펼쳐진 짙푸른 밀림의 웅장함, 신부들의 의지. 그 모든 것이 담긴 대표적인 곡이 ‘Gabriel's Oboe’이다. 단단한 나무를 뚫고 나오는 오보에의 울림, 원주민들의 토속 악기로 두드리는 가슴 뛰는 리듬,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장엄한 선율...영화가 담고 싶어 하는 모든 주제들을 모리코네는 음악 안에 녹여냈다.


언어는 통하지 않고, 총과 화살로 잔뜩 무장한 원주민들의 경계 속에 결연하게 연주되는 오보에 선율은 낯섦과 경계를 내려놓게 한다. 가브리엘 신부는 음악으로 그들의 마음을 얻고, 무력과 권력 싸움 앞에서도 평화와 사랑의 원칙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무력이 정당하다면 사랑이 설 자리는 없소. 그런 세상에서 난 살아갈 힘이 없소


폭력과 업압이 가득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가브리엘 신부의 대사는 묵직하게 가슴을 친다. ‘Gabriel's Oboe' 원곡은 기악곡이지만, 사라 브라이트만이 1998년 가사를 붙여 ’Nella Fantasia(환상 속에서)'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19993월 사라 브라이트만은 'One Night in Eden' 콘서트 비디오 녹화 작업 중 이 곡을 소개하며 다음 곡은 엔니오 모리코네가 영화 '미션'을 위해 작곡한 기악곡입니다. 3년 전 모리코네 씨에게 저 곡에 가사를 붙여 노래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는 완강히 거절했습니다만, 저의 간절한 마음을 알 때까지 2개월마다 부탁의 편지를 썼고, 결국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해주었을 때, 정말로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이 곡은 아름다운 노래이니까요.” 라고 전하며 애정을 드러냈다.


모리코네의 완강한 거절도 녹인 넬라 판타지아의 가사는 영화의 주제처럼 인간이 추구해야 할 이상향 모습을 담고 있다.


나의 환상 속에서 올바른 세상을 봅니다 / 그 곳에선 누구나 평화롭고 정직하게 살아갑니다 / 난 영혼이 늘 자유롭기를 꿈꿉니다 / 저기 떠다니는 구름처럼요 / 영혼 깊이 인간애 가득한 그 곳 / 나의 환상 속에서 난 밝은 세상이 보입니다 / 그 곳은 밤도 어둡지 않습니다 / 나의 환상 속에서 따뜻한 바람이 붑니다 / 그 바람은 친구처럼 도시로 불어옵니다 / 난 영혼이 늘 자유롭기를 꿈꿉니다 / 저기 떠다니는 구름처럼요 / 영혼 깊이 인간애 가득한 그 곳


영화 속에서 가브리엘 신부도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원주민들을 지키고자 격렬하게 저항하는 신부들을 설득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추기경은 교황청에 편지를 보낸다.


"신부들은 죽고, 저만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죽은 건 나고, 산 자는 그들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 죽은 자의 정신은 산 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정의를 구현하고자 했던 신부들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버려지지 않았다.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요한복음 1, 5)


영화 '미션'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또 다른 희망을 전한다.


모리코네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산 자의 기억 속에 남아 또 다른 이야기들을 그려갈 것이다. 그의 음악은 그렇게 세상에 남겨져 별처럼 반짝이며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다. 서로 다른 세월에 존재하게 되겠지만, 그 시절의 빛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하늘에 머물며 오래도록 반짝거리기를... 별이 된 그에게 존경과 감사를 전하며...


▲ 엔니오 모리코네 (1928-2020) 작곡가, 지휘자 / (사진: christina YEO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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