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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의 클래식 칼럼] ' 전염병과 음악' <2>
  • 기사등록 2020-07-08 13:27:13
  • 기사수정 2020-07-08 13: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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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과 음악' 2편


세상 모든 분열의 자리에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질 평화의 날을 고대하며


음악 칼럼니스트 여명진 크리스티나

現) 독일 뮌헨 대교구 소속 가톨릭 교회음악가 및 지역 음악감독

-유로저널 독일부 기자

-음악 칼럼니스트


죽음의 보편성과 필연성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이라 할 수 있는 흑사병은 문화, 신앙, 경제 등 유럽 사회 전반에 걸쳐 모든 면에 영향을 미쳤다. 병의 영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검게 변해 비참하게 죽어나갔으며, 끊이지 않았던 전쟁까지 더해져 당시 사람들에게 죽음은 매일 겪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제는 옆집 농부아저씨가, 어제는 대저택 사는 백작 부인이, 오늘은 아랫마을 양치기 소년이... 매일같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을 것이다.


사람들은 직업, 나이,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마주치게 되는 죽음의 보편성와 필연성을 위로하기 위해 아름다운 죽음을 꿈꾸기 시작했다.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마주치게 되는 죽음의 공포와 필연성을 위로하기 위해 아름다운 죽음을 꿈꾸기 시작했다.


카미유 생상(Camille Saint-Saëns)의 죽음의 무도


20094대륙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스모키 화장을 하고 강열한 검은 의상을 입고 피겨스케이트를 타던 김연아 선수를 기억하는가?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운 강렬한 몸짓을 배경으로 흘러나오던 음악이 생상의 '죽음의 무도'이다.


▲ 작자미상 <죽음의 무도> 18세기 유화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했던 의지는 또 하나의 예술 장르를 유행시켰다. '죽음의 무도'를 주제로 한 많은 회화 작품들에는 해골, , 귀족, 농부 등 다양한 모습을 한 산자와 죽은 자가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장면을 묘사한다.


원래 생상의 교향시 '죽음의 무도'는 시인 앙리 카잘리가 오래된 프랑스 괴담을 바탕으로 쓴 시에서 영감을 얻어 성악과 피아노를 위한 가곡으로 작곡되었다. 2년 후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으로 편곡하고, 노래 파트는 바이올린 선율이 대신하도록 했다.


지그 지그 작! (Zig et zig et zag!)


바이올린 소리를 흉내내는 의성어로 청각을 자극하며 시작하는 앙리 카잘리스의 시의 내용 그로테스크 하기 그지없다.


지그 지그 작! / 죽음의 무도가 시작된다 / 발꿈치로 무덤을 박차고 나온 죽음은 / 한밤중에 춤을 추기 시작하네 / 지그 지그 작! 바이올린 선율을 따라


겨울바람이 불고, 밤은 어둡고 / 보리수 나무에선 신음이 들려온다 / 하얀 해골이 커다란 수의 밑에서 껑충 뛰며 / 어두운 그림자를 가로지른다


지그 지그 직! / 모두들 뛰어들며 / 무용수들의 뼈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 음탕한 연인이 이끼 위에 앉아 / 지나간 옛 감미로움을 맛보려는 듯


지그 지그 작! / 죽음이 끝없이 악기를 할퀴며 연주를 한다 / 베일이 떨어졌네! 춤추는 여자는 알몸이 되고 / 춤추던 상대 남자가 그녀를 사랑스럽게 끌어 안네


(중략)


지그 지그 작! / 죽음이 모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춤춘다. / 지그 지그 직! / 왕이 군중 속에서 농부들과 춤을 춘다 / 하지만 쉿! / 갑자기 춤은 멈춘다, / 서로 밀치며 도망간다 / 수탉이 울었다 / ! 이 불행한 세계를 위한 아름다운 밤이여! / 죽음과 평등이여 영원하라!



▲ 생상 <죽음의 무도> 자필 악보 표지에 씌여진 앙리 카잘리스의 시


생상의 '죽음의 무도'는 이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받아 밤 12시를 알리는 하프의 선율로 시작한다


밤안개처럼 음산하게 깔리는 현악기들의 지속음 사이로 하프가 열두 번 현을 뜯으며 밤 12시를 알린다. -! 날카로운 바이올린의 선율을 타고 오래된 관 뚜껑이 열리면 무덤을 박차고 나온 해골들이 빠른 왈츠 리듬에 맞춰 껑충껑충 기괴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검은 하늘 위로는 까마귀와 박쥐떼가 몰려들어 으스스한 광란의 춤사위를 즐긴다.


죽음으로 향하는 걸음을 멈출 수 없는 저주의 신발을 신은 자들처럼 선율은 무섭도록 빠른 리듬으로 숨차게 달린다. 광란의 축제가 맹렬하게 절정을 향해 갈 때, 새벽을 알리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해골들은 일순간 밤안개 속으로 흩어져 버린다


격렬했던 춤사위는 온데간데없고 다시 죽음의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 서글픈 선율만 남긴 채 곡은 갑작스레 끝을 맺는다.


▲ 생상의 <죽음의 무도> 솔로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 파트 악보


생상의 자필악보에는 죽음의 멜로디를 연주할 솔로 바이올린 파트에 특별한 메모가 되어있다.


바이올린 현의 일반적인 조율은 ---인데, 이 네 개의 현 중 가장 높은 음을 보다 반음 낮은 미 플랫()으로 조율하라는 뜻이다.


이 변칙 조율을 통해 해골들이 추는 광란의 춤사위가 더욱 기괴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효과를 의도한 것이다.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더 효과적으로 음악 안에 풀어내기 위해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생각한 작곡가의 의도는 적중했고 이 곡은 지금도 세계 곳곳의 오케스트라를 통해 연주되며 음악 애호가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수백 년 전 음악이 지금을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여전히 영감을 주는 것처럼, 바이러스는 죽거나 소멸되지 않고 언젠가 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겪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처럼, 전염병의 불길은 언제 어디서든 다시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작고 미세한 바이러스와 세균 덩어리 앞에서 무력해지는 인간의 일상은 때로 초라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인간은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가질 뿐, 또다시 그 두려움, 무력감과 어떻게 마주해 갈 것인지를 고민하고 나름의 방법으로 표현해 갈 것이다.


그 걸음에서 찬란한 문화와 예술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발전되었으며, 우리는 그 역사의 한가운데 살고 있다.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좌절하기보다 이 위기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음악은 그 상념의 시간에 더 없는 깊이를 더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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